기억 지키기

여행을 시작하며...

나는 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여권에 도장을 찍고 나서야 여행의 참맛을 알아버렸다. 그 전에도 우리나라 방방 곡곡 산재해있는 성곽을 찾아 안다닌 곳이 없지만, 첫 해외여행이 주는 짜릿함에 비하면 그 재미가 아무래도 덜하다. 첫 해외 여행지로 몽골(Mongolia)을 선택한 다음 해,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직장생활을 시작했다. 하지만 이미 고기 맛을 알아버린 스님이 나와 같을까. 고단한 직장생활과 짧은 휴가도 내 여행에 대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. 직장 생활 첫 해 주어진 5일 휴가 동안 가까운 베트남(Vietnam)을 갔다온 후, 자연스레 나의 다음 목표는 아시아 대륙을 벗어난 먼 곳, 유럽을 향했다. 그 구체적인 대상은 바로 크로아티아(Croatia), 보스니아-헤르체고비나(Bosnia and Herzegovina), 몬테네그로(Montenegro) 였다.

하지만 직장인의 비애 - 그것은 짧은 휴가였다. 이번에도 역시 5일이 주어졌다. 이 기간을 최대한 활용코자 8월 15일 전인 8월 8일, 8월 11일~14일 이렇게 5일 동안 휴가를 잡았다. 주말껴서 최대 10일 가까이 휴가를 갈 수 있었으나 비행기 운항 일정과 맞지 않아 8월 8일에 크로아티아로 들어갔다가 8월 14일에 나와서 한국에 15일 낮에 도착하는 5박 6일짜리 여행밖에 갈 수 없었다.


크로아티아 지도(http://wikitravel.org/en/Croatia)

번개와 장대비가 나를 맞이한 자그레브(Zagreb)

한국에서 14:45분에 출발해서 독일 Frankfurt를 경유,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(Zagreb)에 도착한 것은 칠흙같은 어둠이 깔린 저녁 10시였다. 간단한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밖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간간히 번개가 어두운 밤 하늘을 두동강 내고 있었다. 안그래도 첫 장거리 여행인데다가, 혼자라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. 인터넷으로 미리 민박을 잡아놓긴 했지만 여행 갈 때는 일부로 별 계획 없이 현지에서 내가 가고싶은 곳을 정하는 스타일이라서 어떻게 자그레브 시내에 들어가서 그 곳에 가야할지도 막막한 상태였다. 이럴 때는 무조건 물어보는 것이 상책이다. 공항 버스처럼 보이는 버스가 한 대가 있길래 기사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시내에 가는 버스라고 한다.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. 시내로 들어오니 더 난감하다. 자그레브 지도도 없는데다가 묵을 민박집이 어디인지도 모른다. 같이 공항 버스를 탔던 두 명의 크로아티아 사람에게 물어보니 자신들도 택시타고 그쪽 방면 호텔에 묵을 예정으로 나보러 택시에 같이 타라고 한다. 알고보니 그 두 사람은 부산에서부터 온 사람들로 나와 같은 비행기, 같은 버스, 같은 택시를 탄 묘한 인연이다. 그 두 사람이 택시비도 대신 내주고 택시기사에게 민박집 위치도 알려준 덕분에 아주 편하게 민박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.


자그레브 상공에서 작렬하는 번개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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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 정보
* 2008년 8월 8일 현재 여행목적으로 크로아티아에 방문할 때는 비자가 필요없다.
Posted by FitzGerald

제목 : Kingdom of Heaven
장르 : 전쟁 영화
평점 : ★★★★★★★★ (별8/ 별 10개 만점)

종교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문제이다. 이 민감한 뇌관을 건드린 <Kingdom of Heaven>이라는 영화를 지배하는 두 가지 사상이 있다면 그것은 '종교의 허무함', '반기독교'이다.

감독인 리들리 스콧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대부분을 영상으로 보여준다. 아니, 영화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, 영상 자체만으로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전하는 건 쉽지가 않다. 전작인 <블랙호크다운>은 전투에 관한 대사와 영상밖에 없었지만,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시덥잖더라도 무엇인지는 확실히 보여준다. 난 그래서 <Kingdom of Heaven>이 '반기독교'영화라 확신한다. 12세기 십자군 전쟁을 그린 이 영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기독교가 이슬람에 도발함으로서 전쟁이 발생한다. 기독교 기사단의 Raymond 가 이슬람 대상을 습격함으로서 Damascus 에서 전쟁이 일어날 뻔 한 일, 살라딘의 누이를 공격해서 죽여서 결국 예루살렘 공성전이 벌어진 일, 100년 전 기독교 세력이 예루살렘의 아랍세력을 학살해서 이 모든 분쟁이 씨앗이 된 것 모두 기독교의 과오이다. 일부 사람들은 반 이슬람 영화라 하지만, 내가 볼 때는 반 이슬람 내용은 없다. 오히려 이슬람, 특히 살라딘에 대해서 굉장히 호의적으로 묘사한 영화이다.

영화의 주 무대는 지금까지도 수 많은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 예루살렘. 영화 내내 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이라는 작은 곳을 위해 목숨을 버려가며 지키고 공격한다. 영화는 말한다. 예루살렘이라는 돌무더기는 종교가 남기고 간 빈 껍데기에 불과한 곳이라는 것을, 지금 자신이 살아있고 살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천국(Heaven)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. 그리고 지금 종교가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에게 무슨 의미인지, 왜 싸우는지 다시 한 번 물어본다.

발리안과 살라딘이 영화의 종말부에 협상을 끝내고 헤어지기 전의 문답에는 그의 생각이 그대로 녹아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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Balian of Ibelin : "What is Jerusalem worth?"
"예루살렘이 무슨 가치가 있지?"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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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aladin : "Nothing"
살라딘 역시 발리안과 같이 '성지(聖地) 예루살렘'에 대해서는 일말의 가치를 두지 않는 합리주의자이다.

이 말을 마치고 뒤돌아 걸어가던 살라딘이 되돌아서서 말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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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aladin : "Everything"
하지만 아랍 세력을 이끄는 수장으로서, 예루살렘은 그에게 있어서 정치적으로 'Everything'인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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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라딘은 발리안을 향해 밝게 웃으며 뒤돌아선다.
Posted by FitzGerald